1987년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때 그 곳엔 초등학교 건물이 있었고, 선생님도, 교실도, 책상도, 칠판도, 시간표도, 교과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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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다 갖추어져 있었고, "자~ 여러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세요."라는 말로 첫 수업을 시작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모터공장에 잠깐 취직한 적이 있었다. 생산직에서 두달정도 근무하다가 학교 다닐때 별 생각 없이 따놓은 자격증 덕분에 생산 설계부라는 곳으로 배치되었다. 그 곳에는 책상이 있고, 컴퓨터가 있고, 전화도 있고, 왠만한 사무 용품이 다 갖춰져 있었다. 설계를 하는데 필요한 메뉴얼이나 참고할 만한 기존 자료들도 많았다.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었고, "열심히 해서 정규사원 되야지!"라는 명확한 목표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 곳 환경이나 조건이 별로라고 생각했다. 좋은 환경을 전제로 해야 좋은 설계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주변 상황을 탓하고 느려터진 컴퓨터에 화내고, 변변찮은 이 조그만 회사에 불평했다.
하지만 회사를 관두고, 군대를 다녀와서 처음으로 내 장사라는 걸 해보니 그때가 얼마나 행복한 때였는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쇼핑몰 창업은 텅 빈 공간에서 처음부터 하나 하나 채워나가야 했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사무실을 얻는 것에서부터 연필 하나까지 내가 준비하지 않으면 누구도 준비해주지 않았다. 불평할 대상도 없었고, 상황을 탓하고 있을만큼 여유롭지도 못했다.
사무실, 책상, 컴퓨터, 마우스, 프린터, 청소도구, 상품 거래처, 메뉴얼, 마케팅, 재고 관리, 세금, 책, 고객, 사업 파트너 등등 창업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것들을 하나 하나 혼자 신경쓰고 준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충분히 해 볼만 한 쇼핑몰 창업. "내 손으로 직접 벌어 본 4천5백원이라는 가치"
2003년도 온라인에서 첫 장사를 시작했고, 동대문에서 땡처리로 받아 온 '저렴한 티셔츠'였다. 티셔츠에는 현란한 나염(프린팅)이 되어 있었다. 당시 내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남들보다 저렴하고 디자인이나 재질은 그나마 괜찮은(팔릴만한) 티셔츠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도매 업체를 찾는 일이었다.
그 다음 쇼핑몰을 만드는 업체에 디자인을 의뢰하고 쇼핑몰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2주일 정도 있으면 쇼핑몰은 완성되었다. 이것 저것 수정 보완 하고, 함께 일할 아르바이트 및 파트타임 직원을 채용해 티셔츠 포장법이나 어울리는 코디법 등을 연구하고 만들어 사진으로 찍어 상품페이지를 채워나갔다. 배송 내보낼때 필요한 종이박스와 사은품으로 보낼 손목아대도 공급 업체를 찾아 구입했다.
이제 드디어 오픈일이다. 첫번째 주문이 들어오고 새우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 한장이 4천 5백원에 팔려나갔다.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때의 첫 기분은 장사를 해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재차 주문사항을 체크하고 종이박스에 티셔츠 넣고 깔끔하게 포장을 완료했다. 오후 5시에 계약된 택배사에서 물건을 가지러 왔고, 발송을 깔끔하게 마무리 하였다.
여기서 4천 5백원이라는 돈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태어난 것이다. 겨우 4천 5백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만약 '티셔츠 쇼핑몰'을 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4천 5백원이라는 돈은 결코 나올 수 없는 돈이었다.
신기하고 흥미로운 쇼핑몰 창업 "작은 돌맹이를 연못에 던지는 것처럼"
그리고, 새우 티셔츠는 4천 5백원 이상의 많은 가치를 창출해 냈다. 경영학 용어중에 '가치 사슬'이라는 조금 현학적인 단어가 있다. 가치 사슬은 연결 사업을 뜻하기도 하는데 누군가 의식하지 않아도 티셔츠 쇼핑몰에서 바로 이 '가치 사슬'이 파생된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티셔츠라는 아이템을 결정했기 때문에 티셔츠를 납품하는 티셔츠 도매업이라는 가치가 생겨난 것이다. 쇼핑몰 웹 디자인을 맡은 업체는 쇼핑몰 제작이라는 가치가 생겨났고, 티셔츠 포장일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했기 때문에 일자리라는 가치가 생겨났다. 그 외에 종이박스와 사은품 손목아대라는 업체는 티셔츠를 매게로 티셔츠 보완재 사업이라는 가치가 생겨났다. 컴퓨터, 사진기, 조명, 에어컨, 냉장고, 택배 등 여러가지 일들이 티셔츠 쇼핑몰 하나로 새로운 가치을 창출시켰다. 이 가치사슬이 끝나는 마지막 지점은 그 어느 누구도 모른다. 아이르바이트생에게 일당을 지불하고, 그 알바생은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사먹고, 옷을 사기도 하고, 책도 사서 볼 것이다.
연못에 작은 돌맹이를 던져 퍼지는 물결의 확산처럼 티셔츠 쇼핑몰 하나를 창업함으로써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생기는 가치 파급 효과는 그 끝을 모르고 점점 퍼져나간다.
텅 빈 공간에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고, 뭔가 의미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만약 모든것이 갖춰진 것에만 익숙해 하고, 비록 작은 돈이지만 그 돈이 가지는 의미를 깊이 생각할 수 없다면 창업이나 사업이라는 것은 대단히 힘들 수밖에 없다.
Posted by mep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