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게 다다.
예전에 어느 카페를 돌아 다니다 이런글을 읽었다. 몸이 아픈 여친에게서 나는 악취 때문에 이전에는 여친을 사랑했지만, 지금도 사랑하지만… 점점 힘들어진다는 그런 내용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글을 읽으며 당연히 쉽게 리플들이 안 붙는다. 어색한 침묵… 무거운 분위기…
두 개의 다른 문화적 담론의 긴장감과 미묘함이 글 안에서, 그 글을 보는 사람들의 기분 속에서 공존한다. 바로 생물학적 진실과 문화적 진실이라는 두 개의 대립되는 담론… 톰 크루즈가 주연한 바닐라 스카이라는 영화가 있다. 거기 보면 백만장자에 미남에 쭉빵 섹스파트너까지 있는 남부러울꺼 없던 톰이 어느날 일생에 만날까 말까할 천생연분 여자를 만나 막 로맨스를 시작하려던 참에 사고가 나서 죽을 뻔 했다가 프랑켄슈타인 같은 외모가 되어 겨우 살아나..
그 여자를 찾아가니 그 여자도 이전에 톰을 사랑할 뻔 하긴 했었으나… 점점 진심과 진실은 달라져 가고 그녀가 그리워 매일 그녀 집 앞을 서성이고 그녀를 멀리서 따라다니던 톰은 졸지에 스토커로 신고 받을 지경에 몰린다.
인간은 오랫 동안 인간 자신을 동물과 의식적으로 구분해오기 위한 경제적, 문화적 고투를 해왔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실은 지금도 문화적 진실 밑에 존재하고 있으며, 실제로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만약, 존경하던 부모라도 어느날 치매 걸려 똥오줌 치워줘야 하고, 땡깡을 받아줘야 한다면… 그걸 감수하는 자식일지라도 한결 같은 마음으로 견뎌내는 것 쉽지 않을 것이다. 문화와 사회, 경제체제의 발달은 생물학적 진실에 대치되는 문화적 진실을 보호하고자 노력해 왔다. 옛날 같으면 고려장 해버렸을 치매 걸린 부모를 꽤 많은 한국인들은 가정파탄 날지언정 하여간 돌보긴 한다.
생물학적 진실은 두렵다. 문화적 진실은 생물학적 진실에 대한 변증법적인 반, 즉 안티테제다. 하지만 합으로 나아가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특히 상대가 조금이라도 흠 있어 보이거나, 남다른 약점 같은게 있으면.. 거의 생물학적으로 왕따시키지만 언제 자기가 그렇게 될지 몰라 거의 노이로제 수준으로 자기를 주위 기준에 맞추려고들 한다. 사람들은 늘 생물학적 진실보다 문화적 진실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어느 게시판의 글쓴이가 사랑의 힘으로 그 여친과 잘 지낸다고 하면야 겉으로 보기에야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마 그 여친과 멀어질 가능성이 더 커보이며, 아무도 그걸 뭐라 할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되는 바의 생물학적 진실에 대하여 그저 동물처럼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고 빨리 잊을려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걸 지켜보며 인식하는 태도… 인간적으로 보자면 나 자신의 대한 한계, 인간의 한계, 인간적 사랑의 한계가 있을테고… 일종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성숙해 가는 단계가 있을 것이다.
동물인 암사자는 새끼가 죽으면 그 죽은 새끼를 놓고 슬퍼하다가 어느 순간 체념하면 그 새끼를 먹어치운다. 무화해버리는 것이며, 체화해버리는 거다.. 하지만 사람은 주위 사람이 죽었을 때 정성을 다해 묻으며, 기념하고, 슬퍼한다. 비록 시체는 생물학적으로 고깃덩이에 다름아니며 구더기와 박테리아에 의해 썩어갈 지라도 그 꼴을 눈으로 보고 싶어하진 않는다. 자기 자신도 그 생물학적 진실에 속해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가급적 인간적 진실로 그걸 포장하고 싶어한다.
오늘 故 최진실 씨의 남편 조성민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과 미디어는 그를 조강지처를 버린 천하의 막장 패륜아로 묘사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의 일대기를 영웅처럼 쏟아냈고 특출난 재능을 안타깝게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실컷 씹어대던 댓글란엔 고인을 능욕하지 말라는 추도의 분위기가 그득했다.
생물학적 진실과 문화적 진실이 쉽게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장(場)…
두 개의 서로 다른 진실을 함께 바라보며…
우와, 정말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