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 주목받는 여성 기업인이 있다.
메인 하우스 대표 야마 에리코 양. 그녀는 올해 29살이다. 81년생. 3년전 홀연단신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로 날아가 그 곳에서 생산되는 황마(대마)로 가방을 만들어 일본에 유통하는 '메인 하우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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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는 일명 서스퍼거들이 득실거리는 일본 경제계에서 그녀가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가방을 많이 팔아서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이윤을 많이 남겨서가 아니다. 가방 하나를 만들어 팔더라도.. 그 가방속에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아 뭔가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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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메인하우스(http://www.mother-house.jp)에 올라온 글을 참조하여 에리코 양 1인칭 관점에서 작성한 글이다.
여행의 시작..
방글라데시 다카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훌쩍 넘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가장 먼저 나를 반긴건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와 배기가스 섞인 희뿌연 공기뿐이다. 주위는 알 수 없는 소리로 시끄럽고 모든것이 산만하다. 공항을 막 나오는데 누더기 차림의 아이들이 시끄럽게 둘러싸기 시작한다.
혹시 이 아이들이 나의 여권과 지갑을 노리고 있는게 아닐까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살이 파르르 떨리면서 심장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한다. 평생 씻어보지도 않았을 더러운 손을 내밀며 내 주위로 몰려와 구걸하기 시작하는.. 크고 맑아보이는 눈을 가졌지만 어딘지 모르게 짠해 보이는 아이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장면에 나는 놀람과 동시에 충격을 받았던것 같다. 게스트하우스까지 가는 동안 왠지모를 참담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듯 하다. 말로만 듣던 세계 최빈국,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상이 이렇게 처참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지막히 "설마 이 정도일줄이야.."
그렇게 backpackers(유스호스텔)에서 멍하니 1주일을 보냈다.
내 인생에 이렇게 긴 1주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당시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 곳 방글라데시에 남느냐 아니면 지금이라도 일본으로 돌아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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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도상국에 대한 생각들..
3년전, 나는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에 본사를 둔 미주개발은행 인턴 선발 시험에 운좋게 합격 했다. 전부터 국제기구에서 개발 원조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운명이 그렇게 정해진것처럼 그렇게 된 것이다. 이 곳에서 주로 하는일은 상사들의 일을 체크하거나 자잘한 업무을 진행하는 일이었다.이 곳에 있는 4개월동안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하나하나 업무를 진행해나가면서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던 "개발도상국 지원 업무"가 밖에서 볼때와는 상당히 다르다는걸 깨닿게 되었다.
이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부잣집 출신으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가진 엘리트들이다. 직원들을 선발하는 대상 자체가 국제 원조와 개발 도상국을 지원하는 일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몇몇 선진국 출신자들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나도 이 조직과 이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 세계에는 1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수억명에 달한다. 이들이 더 잘 살수 있는 방법은 그들에게 1달러보다 많은 돈을 주면 된다. 그러면 그들은 1달러의 삶보다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각국에서 체면치례용으로 보내오는 돈을 지원받아 그 돈을 무의미하게 뿌리는 것. 이것이 개발은행에서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 속한 나를 보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닿기 시작했다. 편안한 컴퓨터 앞에 앉아 숫자나 입력하는 이런 방법으론 절대 세계 빈곤을 퇴치할 수 없다는 것을... 악순환의 연속일 뿐 흑탕물을 마시는 그들의 위장속으로 옥수수 한줌 되어 달려가지 못한다면 아무짝에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확실하게 세계 빈곤을 없애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발 도상국의 현실을 모르면 절대 할수 없는 일이었고, 정말 올바른 지원을 하고 싶어서 허울뿐인 개발은행 일을 관두고 이 곳에 무작정 와 있다.
혼란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결심했다. 이 곳에 남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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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명을 뒤바꾼 황마와의 만남
일본 회사의 현지 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낮에는 회사 업무와 밤에는 대학원 수업을 들었다. 이 곳 다카에서는 오후 6시 이후만 되면 여성은 외출이 금지된다. 여성이 혼자 밤길을 다니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항상 일본에서 가져 온 최루 스프레이와 방범 스프레이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
또한 이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열심히 방글라데시 언어를 배워가며 공부하고 이 곳 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현지 사무소 업무 때문에 방문한 한 박람회장에서 우연하게 접한 황마(대마의 일종)가 나의 운명을 바꿔놓게 된다.
"황마"는 원두 커피 등을 나를때 사용하는 푸대자루 소재로 사용되는 대마의 일종이다. 황마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식물의 5,6배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폐기시 유독가스를 전혀 내지 않고, 비료로도 사용할 수 있는 환경 친화적인 소재이다. 그리고, 방글라데시가 세계 총 수출량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황마 강국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바로 이거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우선, 황마를 이용한 쇼핑백을 만들어 일본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사업 계획을 짰다. 현지 사무소에 사업 계획 추진 허가를 얻고 다카에서 자동차로 6시간 떨어진 공장에 수십번을 오고가면서 최종 샘플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일본으로 귀국해 본사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나의 제안에 임원진들은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결국 사업 진행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실무 담당자들에게 "이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 사업은 진행할 수 없다"는 벽에 부딪혔다. 채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방글라데시 황마를 이용하여 일본인들이 사고 싶은 최고의 가방을 만들자! 이것만 제대로 실현된다면.. 선진국에서 생색용으로 보내주는 지원과 기부가 아니라 지속적인 경제 기반을 제공해 빈곤을 해결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 자리에서 회사를 관두고, 새로운 명함을 들고 다시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그리고 직접 디자인한 가방을 가지고 황마가방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공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문전박대의 연속이었고, 그러다 "샘플을 만들어보자"라는 공장이 나타났지만 샘플이 나오기로 약속한 날짜에 갔더니 "우리는 당신과 그런 계약을 한 적이 없다"고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의 꿈에 걸어보자!"는 공장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공장은 일본 스타일의 가방을 한번도 만들어본적이 없는 공장이었다. 그래도 이 곳 직원들과 수십번의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 끝에 ... 정말 귀중한 160개의 가방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3개의 큰 골판지 박스에 가방을 넣고 일본으로 귀국했다.
이렇게 주식회사 메인 하우스(http://www.mother-house.jp/)가 2006년 3월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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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한 품목에서 시작된 작은 회사
처음에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에게 가방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이후 가방을 판매하는 상점이라면 무조건 뛰어들어 가서 영업을 시작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어린아이처럼 웃으면서 팔아달라고만 했다. 도매의 경우 판매가의 50%에 달라고해서 처음에는 정말 속이 많이 상했다. 그래도 방글라데시 공장 직원들의 미소를 생각하며 이 무모한 영업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그런 인연으로 큰 판매상을 만나게 되었고 처음 계약이라는 것을 맺게 되었는데.. 그 후 일본에 환경과 로하스(유기농) 관련 붐이 불기 시작했다. 관련 블로그와 웹 사이트에 홍보를 시작 했고, 이런 내용이 신문에 거론되면서 골판지 박스에 가져온 160개의 가방은 모두 매진 되었다.
그 다음 650개의 가방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일본 유력 일간지에 4페이지 특집 기사가 실리게 되었고, TV에도 나가기 시작하면서 도매 업체 문의가 늘기 시작했다. 더불어 고객들의 문의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메인 하우스는 설립 1년만에 2007년 8월. 우에노에 첫 직영점을 오픈했다. 현재 일본 전국 20여개의 상점까지 확장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단 한개의 가방만 제작 판매했지만 이제는 약 300개의 상품에 달하며 황마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에서 나오는 다양한 천연 재료를 가지고 "MEN 'S LINE" "LADY 'S LINE" "ERIKO LINE"와 3개의 라인으로 확장했다. 나의 꿈에 걸어보겠다라고 약속한 그 공장은 월 4000개의 가방을 생산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우리가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는 공장을 현지에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제 "메인 하우스"는 생산에서 판매까지 이뤄진 SPA 기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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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지속 가능한 경제 기반을!
현재 방글라데시는 제 2의 중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방글라데시에 기대하는건 비용 절감과 효율성이다. 하지만 우리가 위탁 생산을 더 늘리지 않고, 비용 소모가 많은 현지에 공장을 설립한 이유는 품질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지금까지 방글라데시 현지 공장은 골판지에 테이프를 붙이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들은 누가 제품을 사용하는지..또 고객들이 만족하는지 불만족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 인터넷 화상 채팅을 통해 일본과 방글라데시 현지 공장 사이에서 의견을 교환 하고 있다.
사실 유럽 고급 브랜드 대다수는 아시아에서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일체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한다. 모든걸 다 오픈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할 것이다.
또한 현지 공장의.. 노동환경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실내화, 앞치마, 급식 등을 지급하고, 직원들이 매달 한번씩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직원들이 관리자와 대화를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당연한 이런 일들이 이 곳 현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직까지 시범 케이스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이런 노동 환경이 방글라데시 전체 노동자들에게 하루 빨리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메인 하우스의 매출은 2009년 2억 5000만엔 정도 된다. 대형 가전 업체와 스포츠 브랜드 등과 기획 판매을 계획하고 있기때문에 매출은 더 늘어날거라고 예상한다. 또한 방글라데시에만 한정하지 않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개발 도상국에 각종 지원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네팔에서 내년 봄 공장 준공을 결정했고, 가을 쯤 오픈할 예정이다.
1년에 1개국 이상에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빠르면 내년쯤 유럽에 우리 상품만 모아서 판매하는 백화점을 만들고 싶다. 또 뭔가 더 큰 계획이 있다면 기업으로서 사회 공헌이 아닐까? 지금까지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책가방을 배포하고 있고, 태풍 피해 지역에 지원을 시작하고 있다.
사업 이외의 활동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고 생각한다. 세계에 빈곤이 없어지는 꿈을 꾸며 우리는 계속해서 여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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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이든 장사든 사업이든 뭐가 됐든... 진중한 정보는 거저 얻어지는게 아닌 듯 하다. 남이 알려주는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의 속깊은 진실을 알고 싶다면, 공간과 시간속에 온몸을 밀어넣고 그 곳에서 느껴지는 자신의 주관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주관을 철학이나 이념으로 길러내어 나를 상대하는 직원과 고객들이 납득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 내는것. 바로 이것이 이 시대의 필요한 젊은 창업가들의 정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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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유도 챔피언까지 했던 야마 에리코 양에 관해서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다면 http://www.mother-house.jp/ 스토리룸에 방문해보면 된다.
Posted by mepay